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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1 > 예수님의 명칭을 통해 나타난 계시 l
                    박 형 용   『신약신학·교수』

예수님의 명칭을 통해 나타난 계시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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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여러 가지 명칭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호칭한다. 예수님에게 적용된 여러 가지 명칭을 연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이유는 명칭과 함께 예수님이 어떤 분이며 또 어떤 권세를 가지고 계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에게 자주 적용되는 명칭들은 메시야(그리스도), 주,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인자 등이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명칭들에 나타난 의미를 연구하기로 한다.

  1. "메시야(그리스도)"의 명칭을 통한 예수님의 자기 계시  


구약에서 메시야라는 명칭은 마샤흐(    )라는 동사에서부터 왔다. 그 의미는 "어떤 것 위에 손을 얹는다"이다. 그 의미가 종교적 의식에서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다"로 발전되었고 결국 직분을 시작할 때나 직분을 위임 받을 때 머리에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했다.1)
구약에서 제사장을 세울 때(출 28:41), 선지자를 세울 때(왕상 19:16), 그리고 왕을 세울 때(삼상 10:1)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구별했다고 증거한다. 메시야( )라는 용어는 명사인 제사장을 수식하는 형용사의 기능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레위기 4:3의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    )라고 할 때 "기름 부음을 받은"이 메시야라는 용어이다. 여기서 명사형인 메시야가 발전되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로 사용되었다(삼상 2:10, 35; 삼하 1:14; 시 2:2). 70인경(LXX)은 이런 구절들을 그리스도(    )로 번역했다.

(1) 예수님이 스스로 메시야임을 알고 계셨는가?

예수님은 신약의 다음 구절에서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사용했다. 마태복음 16:16∼20은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그리스도를 예수님에게 적용시켰음을 증거한다. 그리고 이런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예수님은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베드로를 칭찬하고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마 16:20)고 엄히 명령했다.

마가복음 9:41은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속한 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기억하고 자신(내가)이 메시야로서 상을 베풀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누가복음 24:26의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이나 누가복음 24:46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등의 내용은 예수님이 자신을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메시야(    )가 사용된 곳은 단지 두 곳에 지나지 않는다(요 1:41; 4:25).2)

우리들은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느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고찰할 때 간과해서는 안될 자료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언급들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메시야로 태어났음을 볼 수 있다. 마태복음 2:2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는 동방박사들의 질문에 헤롯왕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마 2:4)라고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되물었다. 이는 유대인의 왕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확증하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 1:31∼33은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이 "지극히 높은 이의 아들"이요 "다윗의 위"를 받을자라고 설명한다. 이는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누가복음 2:11에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말한 내용이 이를 확증하며 누가복음 2:26에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한 내용도 이를 증거한다.

예수님 자신의 교훈 가운데서 자신이 메시야요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방법은 직접적인 선언의 방식보다는 간접적인 암시의 방식으로 계시된다. 예수님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이 메시야임을 발견할 때 그들의 고백을 기꺼히 용납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메시야임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16:17의 경우도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경계하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마 16:20)라고 말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메시야(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22:42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라고 물으신다. 그리고 마태복음 23:10에서 예수님은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라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요한복음 4:25에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라고 말한데 대해 예수님의 답변은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요 4:26)였다. 그리고 요한복음 17:3에서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신다. 이상의 구절은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자신을 메시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교훈은 예수님이 재판 받은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예수님은 심판 받는 가운데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마 26:63)라는 대제사장의 질문을 받는다. 대제사장의 질문은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는 엄숙한 질문이었다. 대제사장은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마 26:63)라고 신중한 답변을 기대하면서 질문한다.3) 이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라고 대제사장의 질문의 내용을 인정한다. 비록 직접적인 인정은 아니지만 문맥으로 보아 예수님 자신이 메시야임을 증거하고 있다.

해그너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직접적인 질문에 답을 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의미심장한 대답이다. 예수님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여기서 자신을 나타내신 것만큼 나타내시지 않았다"4) 라고 해석한다.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라고 대답하심으로 스스로의 고백을 통해 자신이 메시야임을 인정하셨고 더 나아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메시야는 다니엘서 7:13에 언급된 인자와 같은 분이요 시편 110:1에 언급된 주와 같은 분이라고 천명하신다.5) 예수님은 여기서 다니엘 7:13과 시편 110:1을 인용하심으로 인자나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야에게 적용되는 명칭임을 분명히 하신다.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에서도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마 27:11)라고 묻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마 27:11)라는 간략한 대답만 하신다. 예수님이 이렇게 간략하게 대답하신 이유는 빌라도 총독이 가지고 있는 메시야에 관한 개념을 포괄적으로 인정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과 빌라도와의 대화는 이를 분명히 해 준다. 요한복음 18:33∼38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왕권은 세상적인 왕권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의와 진리를 원리로 한 영적 영역의 왕이시라고 말씀하신다. 이 부분에서도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자신이 메시야라고 밝히시지 않고 암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다른 자료는 안드레가 시몬에게 말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요 1:41)라는 기록이나, 나다나엘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49)라고 말한 고백에서 찾을 수 있고 또한 마르다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라는 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무리들이 사용한 용어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참조, 마 21:9, 15; 막 11:10; 눅 19:38; 요 12:13)처럼 메시야를 암시하는 용어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 달리셨을 때 유대인들과 군병들의 조롱의 말이나 십자가 틀에 붙인 명패도 메시야적인 용어로서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암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마 27:29, 37; 막 15:29∼32; 눅 23:35∼38; 요 19:19).

지금까지의 자료를 근거로 볼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소극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발표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역 초기부터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의식하고 계셨다. 오직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직을 드러내어야 할 적당한 때까지 적극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것 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 그는 사람들을 강제로 믿게하는 행동주의자로서 사역하시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런데 예수님이 스스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자료는 지금까지 다룬 내용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은 마태복음 16:16 이하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고백하기 이전에 베드로가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백이 있기 전에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지식이 제자들에게 이미 있었다. 따라서 베드로의 고백은 이전 증거들을 근거로한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질문했기 때문에 베드로의 고백은 이미 제자들이 예수님의 메시야직을 알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제자들이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메시야의 사역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연구할 때 단순히 복음서에 사용된 메시야라는 명칭 사용에만 국한하여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1)  William Gesenius, A Hebrew and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Trans by F. 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Oxford: Clarendon Press, 1976), p.603: "anoint, as consecration, solemn   setting apart to an office, always by the use of oil poured on the head."
 (2)  J. B. Smith, Greek-English Concordance to the New Testament (Scottdale: Herald Press, 1974),   p.227(sec.3223).
 (3)  "내가 맹세하게 한다"(        )는 신약에서 이곳에서만 사용된 용어이다.       는 막 5:7에서 사용된다.
 (4)  Donald A. Hagner, Matthew 14-28: Word Biblical Commentary, vol.33b(Dallas: Word Books, 1995), p.799.
 (5)  Ibid., p.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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