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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사회적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의 섭리와 위로 전달하라
 

사회적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의 섭리와 위로 전달하라

목회와 신학


최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 고통스럽고 슬프다. 질문도 계속하게 된다.

- 내 잘못으로 발생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그 고난을 당해야 하나?
- 하나님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실까?
- 자연재해나 사회적 부조리로 발생하는 문제로 국가나 다른 사람을 정죄해야 할까?
- 왜 하나님은 고난의 현장에서 스스로 감추시는 것일까?
- 전형적인 권력형 횡포로 희생된 힘없는 서민은 누구일까?
- 단순히 제의적인 회개만 한다고 하나님의 심판이 멈출까?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한다면 고난은 사라질까?
- 정당하지 못한 권력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 사회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이들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대응하실까?

현재 우리 사회는 큰 고통과 슬픔에 처해 있다. 총체적인 위기다. 바로 ‘고난’ 때문이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들이 당하는 다양한 고난이 존재한다. 하지만 단순히 개인의 인생 차원만 아니라 개인들이 속한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그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 때문에 자신의 과실이나 책임과 상관없이 당해야 하는 고난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 괴롭힘에 시달려 자살하는 학생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인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노모와 장애인 아들의 자살 사건, 그리고 ‘세월호 침몰사건’ 등은 사회적 부조리나 구조 때문에 당하는 사회적 고난이다.

금융 위기, 독재와 탄압, 권력형 비리로 말미암은 사회적 고통이나 대형사고, 전쟁 등도 사회의 부조리나 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고난이다. 또한 쓰나미, 대지진, 대홍수, 유행병 때문에 생긴 집단적인 고난의 경우에는 자연재해에서 경험하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인 고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고난의 근저에는 ‘인간의 탐욕’이 공통적인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창균 교수(합신대)는 “결국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이와 같은 사회적 고난의 문제를 설교를 통해 다루어야 한다. 설교는 사회적 고난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며 “설교자는 청중이 살고 있는 그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특히 사회적인 고난의 문제에 적극적인 대답을 내놓아야 하며, 감당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고난에 대한 설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고난의 문제는 하나님의 섭리의 창으로만 볼 때만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대한 궁극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

한편, 한국신학정보연구원(원장:김정우 교수, 총신대)은 설교전문저널인 ‘헤르메네이아 투데이’(2012년 봄 53호)를 통해 ‘사회적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 설교’를 주제로 사회적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신학적으로 조명하고, 사회적 고난을 주제로 설교할 수 있는 신구약의 본문들을 예를 들어 주해한 신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사회적 고난에 관심을 갖기를 소망하며, 헤르메네이아 투데이의 내용을 일부 정리해봤다.

# 사회적 고난과 설교 / 이성호 교수(고신대학원, 역사신학)



▲ 한국신학정보연구원이 발행하는 설교전문저널 '헤르메네이아 투데이'(2012년 봄 53호)는 '사회적 고난과 하나님의 섭리 설교'라는 특집을 중심으로 신학자들의 다양한 연구논문 및 사회적 고난에 대한 설교의 실제까지 다루고 있다. 성도들에게 사회적 고난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고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1. 사회적 고난을 설교자가 설교할 때, 일차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죄’ 문제다. 물론 개인적 고난과 달리 대부분의 사회적 고난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지 않다. 따라서 고난이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쉽게 정죄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 고난이 당하는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설교할 수 는 없다. 왜냐하면 고난 속에는 일반적으로 죄와 심판의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2. 설교자는 사회적 악의 예를 잘 사용하면서 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며 신자 개인의 삶이 사회적 죄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가 사회적 고난에서 죄와 심판의 요소를 강조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요소는 있다. 심판을 받은 자들이 신자들보다 뭔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설교는 성경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누가 더 죄가 많은지 따지고 고난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이 설교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고난에 하나님의 심판적 요소가 있으니 그것이 신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분명한 표지라는 것을 확신시키는 것이 설교자의 임무이다.

3. 설교자는 신자들에게 사회적 고난을 통해 죄 문제만 지적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소망 없이 좌절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개인적 죄가 개인의 성화로 극복해야 하듯이 사회적 죄와 그로 인한 고난은 사회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4.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고난에 대한 관심은 보는 시각에 따라 크게 상반된 다른 입장들이 대립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가난 문제를 생각할 때, 소위 진보적 입장에 있는 교회들은 가난의 원인을 사회, 경제적인 구조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 결과 가난을 야기하는 경제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심지어 그 경제 체제를 조정하는 기득권 세력들을 기꺼이 타도하려고 하기까지 한다. 반대로 보수적인 교회는 그러한 문제를 국가나 정치가들이 결정할 문제로 보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개인 구제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5. 하지만 이 두 입장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을 직접 돕는 것도 중요하고, 가난을 초래하는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가 다툴 필요는 없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할 수 있는 한 사회적 고난에 대해 기독교적 대안 단체를 만들어 대처해야 한다. 특히 사회적 고난은 신자들에게 아주 좋은 훈련의 장이 된다. 이 고난 속에서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신자에게 고난 속에서 인내하는 것은 단순히 경건한 삶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이 고난을 당하셨지만 그것들에게 대적하기보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다.

6. 하지만 설교자는 고난에서 인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표적인 예는 예수님께서 사회적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신자들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설교다. 예수님의 생애가 원리에서 신자들의 삶의 중요한 모범이 되지만 그것이 신자들의 세세한 모든 삶의 지침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설교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7. 고난은 여러 가지 신학적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고난은 성도들에게 심판이 될 수도 있고, 인내와 연단의 훈련 과정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고난을 어떤 한 관점이 아니라 여러 관점에서 조명한다면 설교자는 설교의 차원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도 훨씬 다양한 관점에서 고난을 구체적으로 성경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사회적 고난에 대한 설교를 위한 역사신학적 이해:칼빈신학을 중심으로 / 안인섭 교수(총신대, 역사신학)

1.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은사 자체도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나누어 주라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다.

2. 칼빈은 아름답고 기쁨이 가득했던 창조 세계가 형벌을 받게 되는 이유를 인간의 범죄로 주목한다. 창조 세계의 청지기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게 된 결과로 생태계가 파괴됐다. 칼빈은 자연계에 발생하는 모든 좋지 못한 현상들을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간의 범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칼빈은 땅이 불모지로 전락하는 것 안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볼 수 있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의 죄를 통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3.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인간 사회는 인간의 범죄로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됐지만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전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적으로 여전히 창조 세계와 인간 사회 속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

4. 신자들이 쓰나미와 대지진, 홍수 같은 자연 세계의 재앙들과 인간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적인 문제 때믄에 신음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이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의 숨어계심’으로 설명한다. 피조물인 인간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일을 하시고 계시는지 다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비록 신자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5. 칼빈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 때문에 드러나지 않으시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감추시기도 하신다. 신자들이 삶의 길을 잃고 헤맬 때, 하나님께서는 숨어 계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적으로부터 보호하시기도 한다. 칼빈은 하나님의 숨어계심을 자신의 십자가 신학 위에서 세우고 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의 옷을 입고 있었다. 십자가의 신학은 이처럼 어떤 것의 반대적 모습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준다.

6.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미루시는 것은 그의 백성을 눈물과 탄식으로 단련하시기 위해서다. 칼빈은 하나님의 숨어계심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와 당신 자신까지도 우리 앞에서 은폐하신다. 또한 우리를 더욱 더 기도하게 하시기 위해, 혹은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침묵하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의 고난 속에서 숨어 계시면서 신자들의 인내를 훈련하신다. 우리가 이것을 잘 인식할 때 비록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어도 우리는 인내하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갈 수 있다.

7. 이 세상에서 신자들은 고난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사회적인 고난은 신자들이 이해하고 극복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확히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사회적 고난들 속에서 존재하지 않거나 침묵하고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고난의 자리에서 숨어 계시면서 신자들을 연단하고 훈련하신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견디기 힘든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그 상황을 직시해서 인내하여 극복해야 한다.

8.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무시하지 않으시며 자신을 우리에게 맞추신다. 칼빈에 의하면 설교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시는 방편과도 같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는 고난에 처해 있어 당황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신자들을 하나님과 만나게 해주며, 그들을 위로함으로써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 사회적 아픔과 고난 문제에 대한 설교 / 김운용 교수(장신대, 예배설교학)

1. 설교는 분질적으로 사회적 행동이며,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새로운 실재를 전하는 사역이다. 설교는 개인의 삶 속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치유와 화해의 복음을 전해야 하며, 개인의 삶과 그 사회를 새롭게 하고 개혁한다는 점에서 성도들과 교회, 사회 속에 직접적인 예언적 개입이 일어나는 기본적 수단이다.

2. 설교자는 첫째, 사회적 불의와 재난을 설교할 때 먼저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선포해야 한다. 신앙은 인간의 죄성과 한계, 연약성을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고백과 함께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점이다. 설교는 세상의 죽음의 권세와 사탄적 권세에 대해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를 선포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타락한 인간성으로 기인한 것임을 드러내어 끊임없이 삶의 메타노이아를 요구하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

3. 둘째, 특별히 자연적 재난은 인간의 타락 때문에 피조 세계도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인식하며 피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셋째, 지구촌의 공동체성과 재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잘 돌봐야 하는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넷째, 설교는 본질적으로 변혁적이며, 세상을 향하여 대안 의식을 제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설교는 세상에 대해 대안 공동체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4. 기독교의 설교는 개인이든지, 사회이든지 간에 죄악과 불의로 덮여 있는 곳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공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왕되심과 통치하심을 선포하는 사역이다. 이러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때, 오늘 사회적 부조리와 구조적 문제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뿐 아니라 재난 때문에 억압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해방과 자유의 말씀이 될 것이다.

# 사회적 부조리로 인한 구약의 고난 본문 주해 / 박유미 교수(총신대, 구약학)

1. (사사기 21:16~23) 이 본문은 사사기 전체에서 마지막에 있는 이야기로 사사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시기에 이스라엘이 영적, 도덕적, 사회적인 모든 부분에서 총체적으로 부패했고, 지도자도 부패했으며, 하나님을 찾는 이도 없는 상황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지 보여주어 역설적으로 사회적 공동체적 부조리로 인한 고난의 문제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자 한다.

2. 이 본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과 명분만을 의해 움직일 때 그 밑에 사는 백성들이 얼마나 처참하고 비극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 이런 사사기의 모습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반영한다. 법과 제도가 약자보다는 강자의 논리를 지지하고 있고, 지도자들도 강자의 입장에서 힘없는 사람들을 더욱 착취하는데 찬성하며 자신의 배만 불리고 있으며, 교회도 이에 편승해 가난한 자를 돌보기보다는 교회의 세력을 과시하는데 정신이 없는 중에 과연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서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어디서 희망을 볼 수 있겠는지 본문을 통해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열왕기상 21:1~4)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는 전형적인 권력형 횡포에 희생된 힘없는 한 서민의 이야기다.

5. 나봇의 이야기는 앞부분만 보면 소시민 나봇이 왕의 권력에 맞서다 억울하고 비참하게 개죽음을 당하고 왕과 왕비는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의인의 죽음과 고난을 그냥 보고 계시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아합이나 이세벨이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죽인 나봇의 일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분노하시고 나봇의 핏값을 아합과 이세벨과 그의 집안에서 찾으셨다.

6. 이렇게 권력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핍박하고 고통을 주지만 이런 권력자들의 형통은 결코 영원하지 못하다. 일반적으로는 살아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고 힘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지만 혹시라도 나봇처럼 억울하게 죽게 되어도 죽음 이후까지도 원수를 갚으시며 의인의 피를 신원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우리는 현재 결코 무너지지 않을 벽처럼 생각되는 권력들이 주는 고난을 견디고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7. 권력들이 정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이 권력은 한낱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음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자는 죽어서도 결코 망하지 않으며, 악인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8. (느헤미야 5:1~13) 공동체 안에서의 부의 불평등을 다루고 있다. 느헤미야라는 영성이 뛰어난 지도자가 공동체의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 알 수 있다.

9.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인 느헤미야는 사회 정의가 실현되고 가난한 자들의 고통이 해결되는 것을 보여준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성벽 공사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했고, 그 대가도 사람들에게 받기를 원치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알아주시기를 원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먼저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였기에 귀족들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10. 어디에서나 힘 있는 사람들은 힘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며 업신여기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약자의 부르짖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로 세워질 때, 그 공동체는 문제가 해결되며 약자가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도자를 바로 세우는 일이 곧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며, 약자의 고통을 줄이는 일이 된다.

# 자연재해에 대한 성경적 대응 방안-소선지서에 나타난 ‘여호와의 날’을 중심으로 / 김희석 교수(총신대, 구약학)

1. ‘여호와의 날’이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가 동시에 일어나되, 심판은 죄인들에게 임하여 형벌을 내리고, 그 심판 과정 중에 ‘남은 자’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케 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날이다. 책무의 날, 신의 현현의 임박성, 은유, 변형이라는 궁극적 목적, 경건한 삶이라는 현재적 목적, 심판과 구원을 위한 수단 등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낸다.

2. 이러한 여호와의 날은 소선지서의 주요 주제를 다루는데, 요엘과 스바냐에 이 여호와의 날이 개념적으로 잘 설명돼 있다. 또한 아모스, 나훔, 하박국, 말라기 등도 여호와의 날 개념을 여러 모양으로 연결하고 있다.

3. (요엘) 요엘은 여호와의 날을 설명하면서 몇 가지 독특한 이미지를 사용한다. 그 첫 번째가 메뚜기 때무에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등의 농산물이 피해를 입는 현상이다. 여호와의 날에 임하게 될 심판적 저주를 표현한다. 1:6은 메뚜기 떼를 한 민족으로, 2:1은 강한 백성으로 표현한다. 즉, 여호와의 날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메뚜기와 이방 군대처럼 임하여 그 땅을 황폐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4. 그렇다면 여호와의 날을 피할 방법은 무엇인가? 요엘서가 제시하는 방법은 공동체의 제의적인 회개다. 요엘이 제시하는 방법은 울며 금식하는 성회를 소집해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 회개는 겉모습만의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찌는 진정한 회개다. 2:13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인애)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이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 사건이 구원사건으로 전환되는 근거가 됨을 보여준다.

5. (아모스) 아모스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책이다. 아모스 4:6~11에는 하나님께서 북왕국에게 심판을 내리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회개케 하시려고 사용하신 기근, 가뭄, 메뚜기, 전염병, 성읍 함락 등의 다섯 가지 재앙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모스의 마지막인 9:11~15에서 구원의 소식이 갑작스럽게 전해진다. 특별히 포도원의 회복이 집중적으로 강조된다.

6. 아모스에서는 요엘이 말한 회개 운동은 일어나지 않아서 결국 여호와의 날이 심판으로 임하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심판을 넘어서서 다윗의 장막을 회복시키는 역사를 베푸시게 된다고 말한다. 아모스에서는 여호와의 날은 심판으로 임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극복된다. 요엘이 제시한 회복의 방법인 ‘인간의 회개’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회복’이 드러나는 것이다.

7. (하박국) 하박국은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책이다. 하박국이 말하는 회복의 방법은 2장에 등장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성실성, 즉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하박국이 말하는 믿음이란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그 심판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행하실 수 있음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8.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이런 하박국의 메시지는 요엘과 아모스의 메시지보다 한층 더 발전한 형태다. 요엘은 회복의 방법으로 인간의 회개를 말했고, 아모스는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역사를 말했다. 이제 하박국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회복 방법에 대한 주제는 소선지서 안에서 점차 발전하고 있다.

9. (스바냐) 스바냐서는 여호와의 날 주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룬다. 스바냐가 설명하는 여호와의 날은 피조 세계 전체에 임하는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우주적 심판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스바냐는 ‘겸손’을 제시한다. 2:3에서는 겸손을, 3:12에서는 곤고와 가난을 남은 자의 특성으로 설명한다. 즉, 겸손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가능성을 두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겸손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것이며, 그들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약속이 스바냐의 결론부를 장식하고 있다.

10. 스바냐가 설명한 ‘겸손한 자들’은 하박국에서 표현된 ‘믿음의 사람’ 주제가 더 발전된 양상이다. 여호와의 심판으로부터 회복되는 방법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것이며(하박국), 그 주권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무릎 꿇는 것이다(스바냐).

11. (말라기) 말라기는 포로 후기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룬다. 포로 후기 중에서도 성전 재건이 완공된 후 시간이 흘러 성전 제사가 다시금 타락한 시점에 백성들에게 선포되는 말씀을 담고 있다. 제사장들은 잘못된 제물을 성전 제사로 드렸고, 그 결과 하나님과 레위 사이의 언약은 파기되었다. 언약을 파기한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뿐 아니라 회복도 약속한다. ‘언약의 사자’가 임해 레위 자손을 다시금 깨끗하게 하신다는 내용이다.

12. 언약의 사자가 임하게 되면 그 언약의 사자는 레위를 회복시켜서 하나님의 성전 제사를 올바로 회복시킬 것이다. 말라기 4:11에 나타난 자연재해의 표현은 언약의 맥락에서 ‘언약 백성의 삶의 모습’과 연관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언약 회복의 주체는 백성이 아닌 언약의 사자이며, 그 회복 가운데 백성들은 성실하게 참여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13. 소선지서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여호와의 날을 피하는 방법과 관련 요엘은 ‘제의적 회개’를, 아모스는 ‘하나님의 주권’을, 하박국은 ‘믿음’을, 스바냐는 ‘겸손’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말라기는 ‘인간의 책임’이라는 렌즈에서 ‘언약의 사자의 역사’라는 렌즈로 전환됐다. 인간의 책임은 ‘구원의 주체’로서의 책임이 아니라 여호와의 날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은 언약 백성’으로서 바르게 살아가야 하는 실제 삶에서의 책임으로 묘사된다.

14. 이와 같은 소선지서의 메시지를 현대의 자연재해와 성도의 반응이라는 주제와 연결시켜 보자. 첫째, 인간의 회개는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있다.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일어나게 된다. 재앙을 만나게 될 때, 그 재앙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회개 행위를 넘어서는 더 중요한 필요가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즉, 재앙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 앞에 무릎 꿇는 겸손과 믿음을 배워야 한다. 잠시 동안 회개하는 기도회를 열어 ‘제의적 회개’를 한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순간의 회개가 아닌 우리의 모습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15. 둘째, 자연재해를 만나게 될 때, 믿지 않는 사람이나 국가를 기계적으로 정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선지서에서 보았듯이 여호와의 날이 자연재해의 형식을 빌어 임하는 경우 대부분이 ‘언약 관계의 파기’로 인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자연재해의 책임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불신 공동체에 돌리지 말고, 세상을 예수님의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할 우리들의 책임으로 끌어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을 바르게 이끌고 변화시킬 책임은 하나님의 교회에 있다. 따라서 자연재해를 보게 될 때 타인을 정죄하고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을 반추하고 돌아보는 신앙의 성숙이 있어야 한다.

16. 셋째, 하나님의 주권적인 회복을 경험한 성도는 언약 백성으로서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언약 백성의 삶이란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열매와 이웃과 사회를 향한 열매를 동시에 맺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나누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인 교회가 세상의 모든 영역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17. 따라서 자연환경을 돌보는 환경 보호론적 연구 및 실천에도 적극성을 보여야 할 것이며,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국가의 행정, 과학 발전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참여해야 할 것이다.

# 개인 고난에 관한 신약본문 주해 / 박형대 교수(총신대, 신약학)

1. 신약성경에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신앙적으로 약해진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다양하다. △약해진 상태 △약해지다 △무기력한 △쇠약해지다 △침체되다 △허약함 △더욱 악화되다 △찌르는 아픔 △침상에 드러눕게 하다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구체적인 증상을 포함한 질병으로는 △혈루증을 앓다 △혼절하다 △종양 △헌데/부스럼 △나병 △중풍에 걸리다 △간질하다 △열병이 난 △경련 △수종병 △역병 △유행병 등이 등장한다. 이밖에 △눈이 먼 △귀가 먼 △말 못하는 △절단된 △불구가 된 △저는 등 신체적인 장애에 대한 상태도 나타난다. 이 외에도 귀신, 더러운 영 등을 비롯해 매 맞음, 갇힘, 굶주림, 불면, 순교 등 여러 형태의 개인 고난의 모습이 등장한다.

2. 약해진 상태와 관계된 단어가 분량에 비해 가장 많이 쓰인 본문은 고린도전후서다. 그 중에서도 고린도후서 11~13장에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상술한다. 약해진 것에 대한 표현이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곳은 복음서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약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약함을 담당하셨다는 진리에 근거해 약함을 벗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동시에 약함이 선호될 수는 없지만 ‘약함’에 대한 성경적 지식에 기초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감당을 위해 약해진 사람들을 귀히 여기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역자라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명 감당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3. 나병, 간질, 중풍, 전염병 등 구체적인 증상을 포함하는 질병에 대해서도 신약성경은 언급한다. 질병의 종류와 정도는 달라졌지만 오늘날에도 질병은 개인 고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질병에 걸렸을 때,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혹 질병이 죄의 결과나 악한 영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동시에 질병이 공동체의 상태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공동체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질병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주님 앞에 죄 문제, 영적 문제, 공동체적 타락 문제를 내놓아야 한다.

4. 장애와 관련된 본문을 주해하는데 있어서도 주의해야 한다. 장애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연약의 한 종류이지만 장애보다는 죄를 기피해야 할 것이라고 신약성경은 말한다. 요즘은 산업재해 등으로 장애자도 늘어가지만 환경오염이나 약물 때문에 기형아 출산도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장애나 기형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죄 문제임을,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5.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악하고 더러운 영을 따를 때, 갈등은 심화되고, 하나님의 법은 더욱 뒷전이 된다. 주님의 도움으로 악하고 더러운 영을 물리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갈 때, 참된 자유자와 예배자가 될 것이다.

6. 불임, 가족 장례, 실직도 다른 개인 고난들과 함께 여전히 존재하는 주된 개인 고난의 요소이다. 불임과 실직은 사회 문제가 됐다. 출산율 저하와 불임 증가로 우리나라는 이제 출산을 장려하고 있고, 산업화과 오래 지속되면서 실업도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됐다. 불임을 단순한 개인 건강 문제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와 사회 문제 해결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인식이 필요하고, 단순한 고용 증가보다는 건강한 직업관 형성이 더 절실해 보인다. 질병, 사고 등으로 뜻밖의 가족 장례를 만났을 때라도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기대하지 않은 구원을 주신 예수님과 마르다의 신앙고백을 실제적인 것이 되도록 도와주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한다.

# 공동체 고난에 관한 신약본문 주해 / 조병수 교수(합신대, 신약학)

1.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기독교 공동체의 고난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를 표현한다. 복음서에 줄곧 흐르는 ‘박해받는 교회’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시험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비록 세상에서는 핍박을 당하지만 항상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2. (베드로전서 4:12~19) 베드로전서 4장은 공동체의 고난을 말한다. 이것은 소위 ‘불 시험’이라고 불린다. 불 시험은 신자를 시험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신자를 넘어뜨리는 것이 불 시험의 목적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고통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베드로는 이런 극렬한 고난 앞에서 공동체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자세히 말해준다.

3. 첫째로 기독교 공동체를 향한 불 시험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베드로는 불 시험을 교회가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의 현재적인 고난이 그리스도의 과거적인 고난에 참여하게 한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신기한 연합이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의 불 시험은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적인 가치를 가져다준다.

4. 이어 베드로의 시각은 미래로 확장된다. 교회가 고난을 매체로 하여 그리스도와 나누는 교제의 즐거움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얻을 즐거움을 예상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교회의 고난은 기독론적으로 과거와 미래에 관련된다. 기독교 공동체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즐거움과 기쁨을 누린다.

5. 둘째로 고난당하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성령이 임재하시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받는 교회는 복이 있다고 말한다. 성령은 끊임없이 교회와 관계하신다. 그리고 성령RP서는 고난의 현장에서 교회를 지탱해 주시는 능력과 보상해 주실 영광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교회는 불 시험 같은 고난을 당하는 중에도 복이 있다.

6. 셋째로 교회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다. 불 시험 같은 고난이 오면 교회에서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드러난다. 고난은 교회의 순수함을 가려내는 하나님의 심판의 실제적인 도구이다. 고난은 순수한 교회를 보장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의 놀라운 작용이 있다. 이 때문에 참 교회는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참 교회의 표식이기 때문이다.

7. 넷째로 교회는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게 된다. 교회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고난 중에서 선한 것을 계획하고 선한 것을 행한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들을 찾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고난을 믿음으로 바꾸신다. 사탄에게 고난을 당하는 교회에게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신앙을 불러일으키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교회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견고케 하신다.

8.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난의 모티브가 흐른다. 사도 요한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의 환란에 동참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사도 요한은 편지를 통해 교회에게 장차 받을 고난이 있다고 말한다. 성도들과 선지자들은 피를 흘린다. 예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다. 종말에는 천년 결박에서 풀려난 사탄이 마지막 전쟁에서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압박한다. 요한계시록의 고난 주제는 주로 공동체적인 성경을 지닌다. 지상 교회는 필연적으로 핍박을 받을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핍박 받는 교회를 끝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사실이다.

9. 무서운 사탄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아래 놓여 있다. 첫째, 고난 겪는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는 보호하심이다. 둘째,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교회를 위해 구원의 도구를 주시는 섭리를 베푸신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는 교회를 돕는 후원자를 세우시는 것이다. 넷째, 사탄에게 고난당하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섭리는 교회에 승리를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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