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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혼합주의 신앙이 한국 기독교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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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주의 신앙이 한국 기독교에 미친 영향


한국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전통 요소가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배 의식 속에까지 샤머니즘, 불교, 유교의 제사 요소가 혼합되어 변질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일찌기 Paul Crane은 한국의 크리스챤은 교회에 출석하는 유교인이라고 말하였다. 혼합주의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장례의식 추모예배 의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 종교 다원주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불교나 도교에서 말하는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똑같은 절대자라고 보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도교에서는 옥황상제로 불교에서는 염라대왕으로 불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가지는 고유의 종교 혼합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사후에 가는 천당이나 극락세계도 결국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인에게는 뚜렷한 종교가 없으면서도 불교든 유교든 샤머니즘이든 다 믿고 있는 데서 생겨난 종교 혼합주의의 현상이다. 이 혼합주의 신앙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일부 교인들은 기독교 본래의 성서적인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여 성부는 한국의 민족의식 속에 계속 전해져 내려 온 최고의 신 개념인 하느님으로 보고 ,성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해 주는 무당적 개념에서 이해하려고 하고, 성령은 입신하여 엑시타시를 경험하게 하는 샤머니즘적 신으로 오해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말하는 하느님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결국은 같은 것이 아니냐는 말에 동조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의 일부는 어쩌다가 기독교를 믿었기에 그렇지 사실은 불교나 기독교나 다 같은 종교요 결국 착한 사람이 되라는 종교요, 모두 복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은 같지 않느냐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를 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종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독선적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퍼붓는 것이다. 일종의 종교 다원주의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장례의식 혼합주의의 사상은 장례(葬禮) 의식에도 나타나고 있다. 장례의식은 죽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기억하고 남은 가족과 친지들이 스스로의 생활과 신앙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데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상례에 대한 의의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기억케 하고, 남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신자들에게 신앙적 각성을 주는 동시에 불신자들에게 전도의 기회를 주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성겸 : 「새예식서」 (은성문화사, 1980), p. 63 기독신자인데도 상을 당한 경우에 시신 앞에 상을 놓고 상위에 향로를 놓아 조문객으로 하여금 분향케 하며, 또 촛불을 켜서 양쪽에 밝게 하고 고인이 사용하던 성경 찬송을 상위에 놓는 것은 불교와 유교의 혼합된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심지어는 상위에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놓아두는 상가들도 있다. 절에서 부처 앞에 촛불을 켜서 밝히며 계속하여 참배객으로 하여금 분향케 하는 것이나, 유교의식으로 조상을 숭배케 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낼 때 혹은 촛불을 켜놓고 음식을 차려 놓고 조문객들로 하여금 분향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의식이라 하겠다. 음식을 차려 놓는 것 대신 성경 찬송가를 올려놓는 외에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의식임을 잘 말하고 있다. 또 상제들이 굴건제복(屈巾祭服)을 하고 갖가지 조기(弔旗)를 들고 장지까지 가는 것은 전형적인 유교의 의식인 것이다. 묘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풍수지리에 밝은 지관을 불러다가 명당을 찾아 묘를 쓰려고 한다든지 비록 지관은 부르지를 않는다 하드라도 명당이길 바라는 것은 유교 내지 도교의 사상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시간을 따져 좋다는 시간에 하관하는 것도 불교와 유교의 혼합된 의식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다른 종교에서 행하는 의식을 어떤 사람들은 전통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기독교에서는 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우상 숭배가 될 수 있고,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해석할 수가 있기 때문이며, 기독교 이외의 다른 교와 융통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철저히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도 인정하고 저것도 인정 할 때 기독교는 혼합종교가 되고 마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죽은 뒤 3일만에 지내는 제사인 삼우제(三虞祭) 일례로 들 수 있는데 유교나 불교에서처럼 장례 후 꼭 삼일만에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탈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한 마디로 말하면 모든 의식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또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도록 해야 한다. 3) 추도 예배 제사는 공자시대 이미 유행하고 있던 중국 종교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조상 숭배 의식의 하나이다. 조상 숭배란 살아 있는 후손들이 이미 죽은 선조들의 영혼을 섬기는 것인데, 살아 있는 후손들은 죽은 조상이 죽어서도 혼의 모습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그 조상들에게 부단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조상들이 자신들의 가계의 행과 불행을 좌지우지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조상들에게 잘못하면 큰 불행이 올 것을 생각하고 살아 생전에 불효를 했다 하더라도 죽은 뒤만은 정성껏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한국인의 조상 제사는 고대부터 지내온 풍습인데 고대에는 샤머니즘과 결부되어 죽은 사람의 영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로 드리다가 신라와 고려의 불교가 이를 이어받아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것으로 수정되었고, 이조에 이르러서는 유교의 효사상과 결부되어 4대까지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사 의식은 종교의 혼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사 의식은 엄격하게 말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일 수 없다. 그 이유는 제사는 후손들이 복을 받겠다는 기복 사상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제사는 기독교의 십계명에서 말하는 부모 공경일 수도 없고 효도일 수도 없다. 김병화 : 제사문제와 기독교의 효도, ( 보문출판사, 1985 ), p.119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죽은 혼이 제삿날 찾아온다 믿는 사상이다. 이는 샤머니즘적인 귀신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앞 샤머니즘의 신관에서 언급한 것처럼 귀신을 불러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제사를 지내는 한국인들은 제삿날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내는 것은 조상 혼이 와서 먹고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샤머니즘과 유교와 불교의 혼합사상이다. 문제는 한국교회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단순히 부모를 생각하는 행위에서 나온 것이고 또 추도 예배나 제사나 사실 형식만 다를 뿐이지 결국 같은 것이 아니냐 하는 일반인들의 주장을 묵인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에게는 제사를 지낸다면 추도 예배로 드리는 것이 제일 좋다고 본다. 추도 예배 역시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며 부모님의 크신 은덕을 기념하고 위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래로는 부모님이 남기신 업적과 신앙을 되돌아보고 본을 받기 위함이어야지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드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추도 예배 때에도 음식을 차려 놓고 추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 추도예배를 드릴 때 ① 사진을 걸어놓고 촛불을 켜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16% ② 사진 앞에 촛불을 켜고 음식을 차려 놓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11% ③ 사진만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8% ④ 음식만 차려 놓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21% ⑤ 예배만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36% ⑥ 무응답자가 전체의 8%로로 나타났다고 한다. 류하순 : 「기독교 예배와 유교제사」 ( 양서각, 1987), p.200 이렇게 볼 때 혼합주의적으로 추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64%나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음식을 차려놓고 추도식을 거행한다는 것은 일단은 죽은 혼이 와서 음식을 먹고 갈 것이라는 일반 가정의 제사의식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전통사고를 지닌 가정에서 기독교적인 생활 방식을 고집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주만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취할 태도라고 믿는다. 6. 결론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우선적인 과제는 교회 내에 있는 전통 종교의 요소들을 제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바르게 성장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전통 종교의 요소들을 제거하는 길이 바로 한국교회의 갱신이라고 본다. 기독교의 부흥을 가로막는 저해 요인들을 제거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갱신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팽배하고 있는 기복 신앙과, 체험 위주의 신앙과, 신비주의 신앙은 한국교회를 샤머니즘적 기독교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신앙은 예배의식과 교인들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인에게는 유별난 종교성은 유교든 불교든 샤머니즘이든 모두 잘 받아들이게 하여 기독교를 혼합된 다원주의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치유하고 더 이상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경의 바른 이해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각 교회마다. 올바른 성경공부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심령부흥회니 전도니 할 때가 아니라 철저한 성경공부로 성도들을 무장시킬 때라고 본다. 신론, 기독론, 성령론, 인간관, 구원관, 예배관, 바른 기도와 은사론, 축복론, 교회론 등을 바르게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믿음의 반석 위에 서게 하고 성도로서의 바른 생활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로 하여금 주의 빛을 드러내게 하는 길이요. 전도의 길이라고 본다. 한국 기독교는 선교 초기 한국의 전통 신앙인 무속과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려왔다. 그런데 어느덧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옥토에는 하나 둘씩 자신도 모르게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고 이 땅에서 공신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루 빨리 한국 교회에 뿌리 깊게 내리고 있는 무속적이고 기복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양적인 성장에만 매달리지 말고 이제는 질적인 성장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른 기독관을 정립시키고 교육을 함으로써 한국교회 깊숙히 뿌리 박고 있는 외래적인 요소를 뿌리 뽑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는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5.혼합주의 신앙이 한국 기독교에 미친 영향 한국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전통 요소가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예배 의식 속에까지 샤머니즘, 불교, 유교의 제사 요소가 혼합되어 변질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일찌기 Paul Crane은 한국의 크리스챤은 교회에 출석하는 유교인이라고 말하였다. 혼합주의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장례의식 추모예배 의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 종교 다원주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불교나 도교에서 말하는 염라대왕이나 옥황상제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똑같은 절대자라고 보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도교에서는 옥황상제로 불교에서는 염라대왕으로 불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가지는 고유의 종교 혼합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사후에 가는 천당이나 극락세계도 결국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인에게는 뚜렷한 종교가 없으면서도 불교든 유교든 샤머니즘이든 다 믿고 있는 데서 생겨난 종교 혼합주의의 현상이다. 이 혼합주의 신앙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일부 교인들은 기독교 본래의 성서적인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여 성부는 한국의 민족의식 속에 계속 전해져 내려 온 최고의 신 개념인 하느님으로 보고 ,성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해 주는 무당적 개념에서 이해하려고 하고, 성령은 입신하여 엑시타시를 경험하게 하는 샤머니즘적 신으로 오해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말하는 하느님과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결국은 같은 것이 아니냐는 말에 동조하는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의 일부는 어쩌다가 기독교를 믿었기에 그렇지 사실은 불교나 기독교나 다 같은 종교요 결국 착한 사람이 되라는 종교요, 모두 복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은 같지 않느냐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를 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종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독선적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퍼붓는 것이다. 일종의 종교 다원주의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장례의식 혼합주의의 사상은 장례(葬禮) 의식에도 나타나고 있다. 장례의식은 죽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기억하고 남은 가족과 친지들이 스스로의 생활과 신앙을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데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상례에 대한 의의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기억케 하고, 남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신자들에게 신앙적 각성을 주는 동시에 불신자들에게 전도의 기회를 주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박성겸 : 「새예식서」 (은성문화사, 1980), p. 63 기독신자인데도 상을 당한 경우에 시신 앞에 상을 놓고 상위에 향로를 놓아 조문객으로 하여금 분향케 하며, 또 촛불을 켜서 양쪽에 밝게 하고 고인이 사용하던 성경 찬송을 상위에 놓는 것은 불교와 유교의 혼합된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심지어는 상위에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놓아두는 상가들도 있다. 절에서 부처 앞에 촛불을 켜서 밝히며 계속하여 참배객으로 하여금 분향케 하는 것이나, 유교의식으로 조상을 숭배케 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낼 때 혹은 촛불을 켜놓고 음식을 차려 놓고 조문객들로 하여금 분향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의식이라 하겠다. 음식을 차려 놓는 것 대신 성경 찬송가를 올려놓는 외에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의식임을 잘 말하고 있다. 또 상제들이 굴건제복(屈巾祭服)을 하고 갖가지 조기(弔旗)를 들고 장지까지 가는 것은 전형적인 유교의 의식인 것이다. 묘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풍수지리에 밝은 지관을 불러다가 명당을 찾아 묘를 쓰려고 한다든지 비록 지관은 부르지를 않는다 하드라도 명당이길 바라는 것은 유교 내지 도교의 사상이라고 아니 할 수가 없다. 시간을 따져 좋다는 시간에 하관하는 것도 불교와 유교의 혼합된 의식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다른 종교에서 행하는 의식을 어떤 사람들은 전통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기독교에서는 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우상 숭배가 될 수 있고, 기독교의 교리를 잘못 해석할 수가 있기 때문이며, 기독교 이외의 다른 교와 융통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은 철저히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도 인정하고 저것도 인정 할 때 기독교는 혼합종교가 되고 마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죽은 뒤 3일만에 지내는 제사인 삼우제(三虞祭) 일례로 들 수 있는데 유교나 불교에서처럼 장례 후 꼭 삼일만에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탈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한 마디로 말하면 모든 의식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또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도록 해야 한다. 3) 추도 예배 제사는 공자시대 이미 유행하고 있던 중국 종교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조상 숭배 의식의 하나이다. 조상 숭배란 살아 있는 후손들이 이미 죽은 선조들의 영혼을 섬기는 것인데, 살아 있는 후손들은 죽은 조상이 죽어서도 혼의 모습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그 조상들에게 부단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조상들이 자신들의 가계의 행과 불행을 좌지우지한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조상들에게 잘못하면 큰 불행이 올 것을 생각하고 살아 생전에 불효를 했다 하더라도 죽은 뒤만은 정성껏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한국인의 조상 제사는 고대부터 지내온 풍습인데 고대에는 샤머니즘과 결부되어 죽은 사람의 영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로 드리다가 신라와 고려의 불교가 이를 이어받아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것으로 수정되었고, 이조에 이르러서는 유교의 효사상과 결부되어 4대까지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제사 의식은 종교의 혼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사 의식은 엄격하게 말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일 수 없다. 그 이유는 제사는 후손들이 복을 받겠다는 기복 사상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제사는 기독교의 십계명에서 말하는 부모 공경일 수도 없고 효도일 수도 없다. 김병화 : 제사문제와 기독교의 효도, ( 보문출판사, 1985 ), p.119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죽은 혼이 제삿날 찾아온다 믿는 사상이다. 이는 샤머니즘적인 귀신 사상이 아닐 수 없다. 앞 샤머니즘의 신관에서 언급한 것처럼 귀신을 불러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제사를 지내는 한국인들은 제삿날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내는 것은 조상 혼이 와서 먹고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은 샤머니즘과 유교와 불교의 혼합사상이다. 문제는 한국교회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단순히 부모를 생각하는 행위에서 나온 것이고 또 추도 예배나 제사나 사실 형식만 다를 뿐이지 결국 같은 것이 아니냐 하는 일반인들의 주장을 묵인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에게는 제사를 지낸다면 추도 예배로 드리는 것이 제일 좋다고 본다. 추도 예배 역시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며 부모님의 크신 은덕을 기념하고 위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래로는 부모님이 남기신 업적과 신앙을 되돌아보고 본을 받기 위함이어야지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드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추도 예배 때에도 음식을 차려 놓고 추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 추도예배를 드릴 때 ① 사진을 걸어놓고 촛불을 켜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16% ② 사진 앞에 촛불을 켜고 음식을 차려 놓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11% ③ 사진만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8% ④ 음식만 차려 놓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21% ⑤ 예배만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36% ⑥ 무응답자가 전체의 8%로로 나타났다고 한다. 류하순 : 「기독교 예배와 유교제사」 ( 양서각, 1987), p.200 이렇게 볼 때 혼합주의적으로 추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전체의 64%나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음식을 차려놓고 추도식을 거행한다는 것은 일단은 죽은 혼이 와서 음식을 먹고 갈 것이라는 일반 가정의 제사의식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전통사고를 지닌 가정에서 기독교적인 생활 방식을 고집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주만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마땅히 취할 태도라고 믿는다. 6. 결론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우선적인 과제는 교회 내에 있는 전통 종교의 요소들을 제해야 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바르게 성장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전통 종교의 요소들을 제거하는 길이 바로 한국교회의 갱신이라고 본다. 기독교의 부흥을 가로막는 저해 요인들을 제거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갱신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팽배하고 있는 기복 신앙과, 체험 위주의 신앙과, 신비주의 신앙은 한국교회를 샤머니즘적 기독교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신앙은 예배의식과 교인들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인에게는 유별난 종교성은 유교든 불교든 샤머니즘이든 모두 잘 받아들이게 하여 기독교를 혼합된 다원주의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치유하고 더 이상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경의 바른 이해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각 교회마다. 올바른 성경공부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심령부흥회니 전도니 할 때가 아니라 철저한 성경공부로 성도들을 무장시킬 때라고 본다. 신론, 기독론, 성령론, 인간관, 구원관, 예배관, 바른 기도와 은사론, 축복론, 교회론 등을 바르게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믿음의 반석 위에 서게 하고 성도로서의 바른 생활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로 하여금 주의 빛을 드러내게 하는 길이요. 전도의 길이라고 본다. 한국 기독교는 선교 초기 한국의 전통 신앙인 무속과 끊임없는 싸움을 벌이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려왔다. 그런데 어느덧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옥토에는 하나 둘씩 자신도 모르게 가라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고 이 땅에서 공신력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루 빨리 한국 교회에 뿌리 깊게 내리고 있는 무속적이고 기복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양적인 성장에만 매달리지 말고 이제는 질적인 성장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바른 기독관을 정립시키고 교육을 함으로써 한국교회 깊숙히 뿌리 박고 있는 외래적인 요소를 뿌리 뽑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는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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